아워 카라 티 작업기



뜨개를 하면서 못생긴 스티치들 때문에 속상할 때가 많다.

늘어지는 코, 혼자 튀어나오는 코를 가지런히 만들기 위해 다른 이들의 팁을 찾아보고 혼자서도 연구해 보고 온갖 노력을 다한다.

마치 이 편물이 기계가 만들어낸 편물과 같아지기를 바라며.

실제로 그런 노력들은 아무도 모르지만 나만 알아챌 수 있는 차이로 조금 더 예뻐진다.

SSK 만 제외한다면 말이다.

SSK 를 예쁘게 뜨기 위한 오조오억 개의 팁을 사용해 보았다.

그 중 가장 만족스러웠던 것은 왼쪽 바늘의 첫 코를 빼서 방향을 바꿔 다시 걸고, 오른쪽 바늘을 두 코의 back loop 에 찔러 한꺼번에 뜨는 것이다.

즉 SSK 는 아니고 첫 코의 방향을 바꾼 뒤 K2TOG TBL 을 하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만 했을 때는 티도 안나지만 여러 개를 했을 때는 병아리 눈물만큼의 업그레이드가 이루어진다.

한마디로 별로 나아진 것은 없지만 습관이 되어 하고 있다는 소리다.


그런데 말입니다.

못생긴 아이들이 한무더기로 모여 있으면 어떨까요? 지옥일까요?


실험해보기로 했다.

여기에는 조건이 있다. 규칙적으로 모여야 한다는 것이다.

생각해보자.

내 눈 코 입이 정말 못생겼는데 조화마저 이루지 않고 지들 맘대로 주차되어 있으면 그것은 과연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가?

주차가 잘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몸통과 소매를 따로 떠서 겨드랑이에서 합쳐서 요크를 떠올라가는 바텀업 래글런을 생각해 보자.

래글런 라인을 떠올려보면 못생긴 SSK 들이 매우 규칙적으로 다다다다다다- 무더기로 다다다다다-

그런데 바텀업 래글런 스웨터를 보고 못생겼다, 래글런 코가 너무 튄다, 래글런 라인이 왜 저래? 아마추어가 뜬겨? 라고 말하는 사람 1명도 못 봤다.

나조차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아워 카라 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탑다운으로 뜨기 때문에 SSK 는 사용되지 않는다.

오히려 긴 소매가 아닌 이상 패턴에 SSK 는 단 한 번도 사용되지 않는다.

하지만 늘림 코와 줄임 코들을 SSK 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코들도 못생겨야한다.

뜰 때 코가 왜 이렇게 못생기게 나오지? 스트레스 받는 일은 없어야 한다.

왜냐하면 실제로도 못생겼기 때문이다.


아워 카라 티의 디자인 컨셉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미숙했던 나의 젊은(?) 시절의 영광.

미숙했지만 아름다웠던 우리들의 청춘.


고백하자면 이 컨셉은 처음에는 없었다.

단지 스티치들을 배열하는 것과 실 고르기에 약 두 달을 허비했다.

그런데 어느 날 뉴진스의 뮤비를 보고 아이디어가 번쩍했다.

숟가락 얹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청춘, 분위기, 표정들이 향수를 불러왔다.

모델 착샷을 찍을 때 뉴진스 멜빵 바지를 입으려고 했으나, 우리 톱모델님(@1sttoday) 의 강력한 거부로 무마되었다.


영감이 떠오르고 컨셉이 만들어지니 진행 방향이 잡혔다.

캐주얼하고 가벼운 분위기를 위해 다듬어지지 않은 오가닉 면사가 필요했다.

뭔 말인지 알즤?

그런데 그런 실은 찾기 어려웠고 문득 떠오른 것이 Retrosaria 였다!!

이미 유명한 실이다.

나 역시 Mondim, Brusca 를 사용해 봤는데 매우 좋아한다.

그리고 Brusca 실과 비슷한, 하지만 recycled cotton 이 들어간 Mungo 실을 선택했다.



이름도 귀엽지 않은가 뭉고라니!

우리 강아지가 수컷인데도 여자 이름(달자)을 가지고 있는데 이 참에 개명해줄까 싶다.


내가 생각한 컨셉과 찰떡인 실이 선택되고 나니 나머지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패턴은 이미 봄에 어느 정도 완성해 놓았기 때문이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나는 조금 더 가는 실을 원했다. Sport - DK 정도 되는.

20코 게이지 정도로 완성할 수 있는 그런 실.

그래서 패턴에 21코 게이지를 추가했다.



좀 더 클래식한 분위기가 나온다.

긴 소매 지침도 추가했다.


래글런 라인에 못생긴 코들이 가득하지만 전체를 보았을 때는 어떠한가. 아름답다.

보아라 전체를! 숲을 보아라!

(긴 소매는 짧은 소매와 다르게 SSK 가 들어간다.)


늘 그렇지만 이것은 두 개를 떠야한다.

18코 게이지와 21코 게이지를 개별 패턴으로 인식하여 두 개를 떠야 한다.

디자인과 상세 치수가 거의 같다.

허리 고무단만 조금 다르다.

18코 게이지는 캐주얼한 분위기로 몸통 둘레와 비슷하다.

21코 게이지는 클래식한 분위기로 몸통 둘레보다 작다.

지침 또한 거의 같다.

그럼에도 게이지와 실 때문에 이렇게 다른 분위기가 연출된다.

그래서 이 패턴은 반드시 두 개를 떠야 한다.

구매 전 각서를 받으면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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